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문재인 현정부의 세번째 환경부장관인 한정애 장관, 서울 강서구 병 지역의 국회의원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한정애의원의 프로필과 정치경력,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965년 생이며, 2월 9일이 생일입니다.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자라게 됩니다.
해운대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의 환경공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졸업후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입사를 하였는데, 중간에 휴직을 하고 영국으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의 노팅엄 대학교에서 산업공학박사를 따고, 귀국후에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노조위원장으로 오릅니다.
노조와 인연을 맺어 한국노총의 대외협력본부장까지 역임을 하게 됩니다.
2012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통합당 창당에서 노동계를 대표하는 인력으로 참여하였으며,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에 11번을 배정받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됩니다.
비례대표로 의원직을 수행하며, 강서구 병 지역에서 활동을 하여옵니다.
▷ 출생 : 1965년 2월 9 / 충청북도 단양군
▷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서구
▷ 본관 : 청주 한씨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가브리엘라)
▷ 학력 :
강동국민학교 (졸업)
해운대여자중학교 (졸업)
해운대여자고등학교 (졸업)
부산대학교 (환경공학 / 학사)
부산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공학 / 석사)
노팅엄 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박사)
▷ 소속 정당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 지역구 :
서울 강서구 병
의원 선수 : 3
의원 대수 : 19, 20, 21
▷ 소속 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 현직 : 환경부장관 / 제21대 국회의원
한정애 의원은 일명 김용균법을 통과시키는데 힘을 낸 장본인입니다. 당시에 야당이 반대를 하여 나경원 원내대표를 찾아사 눈물을 흘리면서 통과 찬성에 힘을 실어 주기를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김용균 법 같은 것을 반대하는 야당은 대체 왜 반대를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반대도 할게 있고 안할게 있는데 말이죠.
2020년에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기존에 몸 담고 있던 강서구 병에서 공천을 받고 3선에 성공합니다.
3선 성공 후에는 보건복지부 상임위에 배정을 받았으며, 보건복지위원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3번째 환경부 장관이 되었으며, 환경공학을 전공한 환경전문가입니다.
국회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일과 미세먼지 대응등의 업무에서 전문화된 인력으로 일해왔습니다.
김용균법이나 산업안전공단의 노조위원장 출신이라서 환경부 장관까지 올라간 것이 의외라른 여론도 있습니다.
현 정부의 장관 인사에서는 유일하게 야권의 반대를 받지 않고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으며 호의적은 분위기로 청문회가끝난 장관이기도 합니다.
이쪽 분야에는 워낙 전문가이니 야당의 입장에서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청문회 이후 가장 빠른 시간에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었습니다. 그만큼 모두가 반대의견 없이 만장일치로 한정애 의원의 장관행을 지지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3선 의원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아서 정책에서는 넘버1으로 통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후변화포럼등에 참여하여 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이며, 노조출신이라는 점이 근로자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것이라는 희망도 있어 보입니다.
2013년에는 그녀가 직접 쓴 자서전을 출간하였는데, 제목이 '하얀 봉투'입니다.
2012년 국회입성하여 18대 대선까지의 이야기를 적었고, 아주 자세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성된 책이라서 그녀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 입사하여 2년차부터는 산업 현장에 나가서 안전보건점검 업무를 맡았는데, 이때 부산의 문현동에 있는 조그만 공장을 점검 나갔다가 공장장이 내민 하얀봉투를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죽어라 일만 해도 간신히 먹고살까 말까 한 이런 사람들이 점검이라는 이름 하에 나온 이에게 봉투를 내밀어야 하는 이 현실에 미안했다”
그래서 그녀가 쓴 자서전의 제목이 하얀통투입니다.
그녀는 1999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산업안전공단의 노조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노총의 공공연맹 부위원장을 맡습니다.
그녀는 노무현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노사모의 회원입니다.
유학중에도 해외 노사모에 가입하여 후원금을 모아 한국으로 송금할 정도로 노무현 전대통령을 지지하였습니다.
노사모 활동중에 남편인 강동완씨와 만나게 되었고, 일본에 있던 남편과 우연하게 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결국 2002년 결혼하자는 청혼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혼 당시 둘은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얼굴또한 본적이 없었는데도 청혼을 받아들여 결국 2006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문재인 정권의 저탄소 /신재생 정책이 앞으로 더 힘을 받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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