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미얀마의 국가고문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며칠전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구금하였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뿐만 아니라 여당 고위 인사들이 모두 2월 1일 아침 미얀마 군부에 의하여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군부가 이렇게 사건을 감행한 이유는 총선에서의 여당 압승에 불만을 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총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아웅산 수치 고문과 군부를 대립각을 세워왔으나, 군부가 결국 다시금 이렇게 말도 안되는 무력행위를 저지르면서 전세계의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선 미얀마의 국가고문을 맡고 있는 아웅산 수치여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출생일 : 1945년 6월 19일(75세)
▶ 출생지 : 영국령 버마 기 영국령 버마 랑군
▶ 학력 :
지저스 & 메리 고등학교 (졸업)
델리 대학교 (정치학 / B.A) (1961-1964년)
옥스포드 대학교 세인트 휴스 칼리지 (경제학 / M.A) (-1968년)
런던 대학교 (사회과학 / Ph.D) (-1985년)
▶ 신체 : 168cm, 62kg
▶ 가족 :
父: 아웅 산 장군
母: 킨 치
배우자 마이클 에어리스
슬하 2남
▶ 약력 :
미얀마 하원의원
국민민주연맹 지도자 (1989년 – )
미얀마 에너지부장관
미얀마 교육부장관
미얀마 대통령실 장관
미얀마 외무부장관
미얀마 초대 국가고문 (2016년 – 2021년)
▶ 정당 : 국민민주연맹
▶ 임기 : 미얀마 초대 국가고문 2016년 4월 6일 – 2021년 2월 1일
▶ 별명 : 공작새, 철의 난초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가이면서 정치인입니다. 2016년 이후부터는 실질적인 미얀마의 국가원수이면서 민주화 운동가입니다.
정당은 국민민주연맹 NLD이며, 정당의 의장을 지내고 있습니다.
군부와는 불안한 동거를 계속 하였으나, 결국 2020년 총선에서 국민민주연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하면서 군부가 반발을 일으켰고 쿠데타로 실각하게 됩니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였던 아웅산의 딸입니다. 델리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영국에서 유학 시절 만난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 후에는 아들 둘이 태어나고 되고, 남편을 내조하면서 영국에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1988년 어머니 병간호 문제로 미얀마로 입국 후에 갑작스레 집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미얀마 민주화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그녀는 당시에 친오빠를 대신하여 항쟁 도중 연설에 참여하세 되고 그당시 연설이 대중을 감동시키면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대표가 됩니다.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계획당이 통치를 하고 있었으나 군부 독재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결국 아웅산 수치는 국민민주연맹을 창설하게 되고 의장을 맡게 됩니다.
수치의 민주화 운동으로 네윈 장군이라는 독재정권이 물러나게 되지만, 군사정권을 대량학살을 시도하게되고 결국 아웅산 수치는 1989년 가택연금을 받게 됩니다.
1990년에는 국제정세의 요청에 따라 미얀마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며, 이미 군사정권에 질릴대로 질린 국민들이 아웅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을 82%나 밀어주게 됩니다. 그랬더니 군부는 선거 무효화를 주장합니다. (하는 짓이,, 어느나라나 군부독재는 늘 한결같습니다)
1991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지만 가택구금중이었던 아웅산 수치는 직접 가지 못하고결국 남편과 아들들이 그녀의 사진을 품에 안고 참석하여 대리수상을 합니다.
1999년 남편이 영국에서 암으로 사망하지만 영국으로 갔다가 미얀마로 들어오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영국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2010년 11월 결국 미얀마의 군부는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해제합니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군부에겐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노벨평화상까지 받아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그녀를 어떻게 더 잡아둘순 없는 처지였습니다.
일단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국부였던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점때문이라도 이미 국민들에게 그녀는 국가원수급으로 칭송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얀마에서 아웅산 장군을 부정한다거나 그 일족을 위험하게 한다는 것은 미얀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아무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라도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군부내에서도 아웅산 수치를 이토록 계속 가택연금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내부적인 이견은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의 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단독정부수립에 성공합니다.
이것으로 53년이나 이어져온 군부의 독재가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아웅산 수치는 외국인 배우자를 둔 미얀마인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조항때문에 결국 총리에 오르는 것이 한계였으나, 대통령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지고 미얀마를 통치하게 됩니다.
미얀마라는 나라는 군사쿠데타아 반복되고, 현재 군벌 독재가 사라져도 또 다른 군벌 독재가 등장할 배경이 갖추어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미 군부의 사라지지 않는 힘을 겪었던 아웅산 수치의 입장에서는 총선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만으로는 미얀마를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로힝햐 사태에서도 본인이 강하게 부정을 할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소극적으로 군부의 학살에 입을 다무는 것으로 힘들게 만들어온 민주주의의 끈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디, 금번 자택구금이 모두가 원하는대로 얼른 풀려서 다시금 국민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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